연산 돈암서원
돈암서원은 사계 김장생이 타계한지 3년 후인 인조 12년(1634) 충청남도 연산면 임리 249번지에 창건되었으며 효종 10년(1659) 사액 되었다.
창건시 김장생을 주향으로 하였으며 효종 9년(1658) 신독재 김집을 추배하였고 이어 숙종 14년(1688)에 동춘당 송준길, 숙종21년(1695)에는 우암 송시열을 각각 추배하였다.
이 서원은 김장생 문인들이 스승을 추모하여 사우를 건립한 뒤 위패를 봉안하고 제사를 지내오다 사당 앞에 강당을 건립하면서 서원의 단초를 이루었다. 당시에는 현재의 연산면 임리(林里,숲말)에 소재하였는데 서원 서북쪽에 돈암이란 큰 바위가 있어 서원의 이름을 돈암이라 하였다 한다. 고종 8년(1871)의 전국적 서원 훼철령에서도 철폐되지 않고 보존된 유서 깊은 서원이다. 고종18년(1881)에 이르러 숲말의 서원이 지대가 낮아 홍수 때에는 뜰 앞까지 물이 차므로 조금 높은 지대인 현재의 위치로 이건하였다.
돈암서원이 있는 연산은 조선시대 공주목에 속하며 동으로는 진잠과 회덕, 옥천, 금산 등이 있고 서로는 은진, 석성, 이산, 한산 등이, 남으로는 호남의 여산, 고산 등이, 북으로는 노성, 공주가 있는 호서사림의 중심부라 할 수 있다. 연산은 이런 지리적 조건과 거유 김장생의 등장으로 17세기 들면서 조선 정계의 비상한 관심을 받았고 호서는 물론 전체 기호사림을 영도하는 위치에 서게 되었다.
처음 서원의 창건 발의가 나온 것은 김장생 타계 직후였다. 인조 10년(1632) 여러 유사가 주도하고 20여 충청지방 각 지역 사족들이 호응하여 창건을 정식으로 발의하였다. 발의에 참여한 유사들의 면면을 보면 현직 관료 6인, 전직 관료 9인, 유학 4인, 생원 4인으로 이들이 서원 창건의 실무진이었다. 그리고 여러 읍의 유사들은 재원을 조달하였고 그밖에 공주목, 청주목, 홍주목 산하의 20여 지방 유림들이 재정적 지원을 하였다.
이 서원은 효종10년(1659)에 이어 현종1년(1660)년 재차 사액을 받았다. 사액을 두 번 받는 경우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불과 1년 만에 같은 이름으로 재사액 되는 것은 드문 일이다. 재사액을 청하는 유생의 상소에 대해 조정에서는 “이미 효종때 선액되어 중첩되게 사액함은 부당하지만 일대 유종 김장생을 경모하는 여러 선비들의 요청을 가상하게 여겨 특별히 허락한다”(『書院謄録』庚子(현종1), 2월 19일)고 한 것으로 보아 돈암서원에 이때 다시 사액이 내려진 것은 사실인 것 같다.
이로써 돈암서원은 호서는 물론 기호 전체에서 존숭 받는 서원으로서 김장생을 제향한 서원 중 가장 비중 있고 영향력 있는 서원으로 인정받았다. 공주 충현서원이 공주 일원의 수선지지(首善之地), 즉 공주 사림을 움직이는 좌장격이었다면 돈암서원은 그 영향력의 범위가 더 넓어 호서 전체 나아가 호남까지 미쳤다. 예컨대 돈암서원이 주동이 되어 조헌 묘의 이장과 사우 이건에 대한 통문이 발간되고 김상헌 등 범기호계 인물의 제사를 돈암서원에서 지내게 한 것(『돈암서원지』(하)<豚巌書院祭清陰金先生文』>), 나주 반간사가 향사홀기를 정할 때에 돈암서원의 의절을 따른 예 등은 돈암서원이 타 서원·사우의 수범이 되며 수선지지 역할을 하고 있었음을 알려주는 것이다.
또한 돈암서원의 유생 도기 등을 분석해 보면 참석자들의 면면을 통해 돈암서원의 세력 범위를 유추할 수 있는데 대략 호서 남부 및 전북 지역에 분포되어 있다. 이는 이 일대가 김장생에서 송시열로 이어지는 호서사림의 실질적인 세력권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흔히 충청 지방은 타 지역에 비해 충절인의 제향이 많고 특히 차령 이남은 충절인 외에 예학의 대가들이 많이 제향되었다고 하는 데 이런 호서사림의 지역적 특성 형성에도 일조를 이루고 있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요컨대 김장생은 기호사림의 적통이자 당대 최고의 산림으로 존숭 받았으며, 그를 제향한 대표적 제향처가 돈암서원이었으므로 돈암서원은 기호사림 전체의 구심체가 되었다.
http://tour.qubi.com/ae/TR_B_05020100.jsp?c1=A&res_cd=4423-A-20646&sub_menu_no=2(위 글의 출처)
충남도 지정 유형 문화재 제156호
강당기능을 한 응도당 건물의 조성은 낮은 평지를 정지하여 기단을 꾸미고 있다
기단은 비교적 정교한 화강석을 돌리고 있느데 정면의 경우 1단의 초석이 이루어져 있지만 후측면은 2단의 조합을 이루고 있다 평면 구조는 정면 5칸 측면 3칸에 맞배지붕구조를 가지고 있다 (참고문헌: 문화유산으로보는 논산의 발자취 2003.3.25 논산시외)